지난 8월 말, 여름의 끝자락이자 가을의 초입에서 천년고도 경주에 다녀왔다.
평소에도 1990년대 KBS 역사스페셜까지 즐겨보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세계사 능력검정시험까지 응시했을 정도로
역사덕후인지라 약 5년만의 경주방문은 새롭고 설레는 일이었다.
남자 넷이 여름마다 루틴처럼 가는 여행을 올해는 어디로 갈 지 고민도 했지만
경주로 목적지가 정해진 뒤로는 일사천리로 나아갈 수 있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출발해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바캉스 최절정 시기는 지나서였는지
고속도로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경주로 내려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히 허기만 달랬기에 경주에 닿자마자 식사장소부터 찾았다.
장소는 용강국밥이었고,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가게였으며 이른 아침식사가 가능했다.
사실 크게 기대를 안했었지만 용강국밥은 서울의 여러 노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수육정식을 시켰는데 특히 수육의 맛이 일품이었다.
우선 지방없이 주로 살코기로 내어진 고기의 질이 좋았고 부추와 야채들도 신선해서 아침에 기운을 내기에 충분했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첫술에 배불렀고,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 들었다.
식후에 방문한 첫 역사유적은 신라문화를 대표하는 불국사였다.
신라시대 경덕왕 원년에 창건된 불국사는 오랜 기간 대한민국을 대표해온 문화유적지다.
해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서깊은 불교 사찰이기도 한 불국사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이다.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지로 각광받아왔음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 불국사는 1500년대 임진왜란 당시, 부산에 상륙했던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에 의해 무너지고 소실되었으며
임란 이후 본격적인 복원작업 뒤에도 조선 후기로 갈 수록 아래 사진과 같이 상태가 안 좋아졌다.
이러한 연유로, 일제시대에 문화재 조사 및 보호라는 미명하에 나름의 관리가 이뤄졌는데
이 때 도굴된 불국사의 보물들의 목록(다보탑 돌사자 1쌍 포함)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비교적 단조로운 구조를 가진 석가탑은 현재의 부처가 설법하는 내용을 표현한 탑이기에
과거의 부처인 다보여래의 불법 증명을 상징하는 구조물인 다보탑보다 수수하다.
십원짜리 동전에도 석가탑이 아닌 다보탑이 쓰이고 있다.
석가탑은 조선시대에 낙뢰까지 맞아 상륜부가 소실되고, 1966년에는 도굴시도도 있었을 만큼 부침이 심했다.
오층석탑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층기단과 하층기단 그리고 그 위에 삼층석탑이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석가탑과 나란히, 우뚝 솟아 있는 다보탑은 그 구조와 뛰어난 건축양식이 인상적이다.
저 위의 돌사자는 총 네 마리가 있었으나 두 마리는 유실되고 한 마리는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보관중이다.
남아있는 것은 형태가 온전치 못한 한 마리 뿐이다.
다보탑 내의 사리함 또한 일본에서 도굴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국사에 머무르다보니 고3시절 졸업여행으로 방문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당시, 그 친구들은 다들 어디서 뭘하고 지낼까? 2022년이 올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다들 건강하길 빈다.
우리는 어느 덧 시장끼가 돌아, 불국사를 뒤로 하고 식당을 검색했다.
보문단지의 조조칼국수에서 들깨칼국수와 해물파전 그리고 막걸리를 한잔씩 하기 위해 이동하는 길에
아래 사진과 같이 황룡사 9층 목탑 모형건물을 볼 수 있었다. (창건당시 실제로 약 82m였다고 한다)
실제 크기와 유사하게 지었다고 하는데 고려시대 몽골군에 의해 소실되기 전까지만 해도 당시, 한반도 최대 목탑이었다.
선덕여왕 시기 만든 탑으로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로 9층까지 지었고,
1층은 현재의 일본, 2,3층은 현재의 중국, 4층은 현재의 제주도인 탁라, 5층은 백제, 6~8층은 각각 말갈, 거란, 여진
그리고 9층은 고구려를 뜻했다고 한다.
조조칼국수에서는 대기번호를 받고, 앞 팀 20여팀이 지난 후에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해물파전과 칼국수 그리고 알싸한 밤 막걸리를 한잔씩 하면서 여행의 노곤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여행은 언제나 밥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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